5. 자연 속의 골프장
모래와 바닷물이 이동을 하면서 남겨 놓은 언덕과 작은 계곡들, 그리고 토끼들과 양 떼들의 먹이이면서도 빽빽하게 자라난 잔디야말로 이 게임을 가능케 하는 완벽한 조건이었다.
대영제국과 아일랜드 공화국의 유명한 코스들은 모두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정례적으로 브리티시 오픈대회가 개최되고 있는 코스들은 세인트 앤드루스(현재 최북단임)로부터 남동 잉글랜드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래땅이 개발된 코스들이다.
또한 영국 제도에는 멀리 스코틀랜드 동북쪽의 로열 도나 크로부터 포트마녹, 로열 포트러시, 밸리부니언 등과 같이 아일랜드의 훌륭한 링크스에 이르기까지 약 10여 개에 달하는 링크스 코스가 있다.
그밖에 남부 스웨덴의 팔스터 보는 이 같은 지질을 갖추고 있는 매우 훌륭한 코스이며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초창기의 코스들은 오늘날의 코스와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코스에는 퍼팅 그린이나 티가 없었다. 코스도 상당히 거친 데다가 거의 손질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홀 역시 매우 원시적인 형태로서 볼이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지점임과 동시에 계속해서 다음 드라이브를 치기 위한 티를 만드는 모래를 공급해 주는 곳이었다.
6. 모래 세우기와 토끼 그린
경기자들은 홀에서 볼을 꺼낸 뒤 다시 축축한 모래를 한 줌 집어내서는 이를 손가락으로 높여 세워 볼을 놓을 수 있는 작은 마운드를 만든다. 이 티는 바로 홀 옆에 만들어지는데 모래를 자꾸 집어내기 때문에 홀은 점점 더 깊어지게 된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볼을 겨우 꺼낼 수 있을 정도로 홀이 깊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때 다시 새로운 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래 언덕들 사이에는 잔디로 덮인 평지가 펼쳐지는데 이는 몇십 년에 걸쳐 토끼나 여우 같은 동물들과 이를 뒤쫓는 사냥꾼들이 밟고 지나가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길이 결국 페어웨이로 발전되며 홀 주변에는 게임이 되풀이됨에 따라 그 형태가 변화되어 퍼팅만을 할 수 있는 그린이 형성된다. 이는 또 티샷만을 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된 구역이 설정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잔디는 토끼들이 베어 먹고 있었으므로 항상 짧게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특별히 잔디를 깎아 줄 필요도 없었다. 영국의 많은 링크스 코스들, 특히 북부 데번의 손턴 샌즈와 같은 곳에서는 20세기 후반까지도 페어웨이의 잔디관리를 토끼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경기 횟수가 잦아지면서 잔디가 자연 복원되는 속도가 손상을 입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자 비로소 인공비료가 사용되고 용수가 공급되는 등 과학의 힘을 빌어 골프가 발전되기에 이른 것이다.
7. 실버클럽의 전통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골프를 체계적인 게임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즉, 골프만을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클럽들이 탄생하였고 공인된 규칙이 제정되었다.
최초의 클럽으로서 그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 클럽은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Gentlemen Golfers of Leith) 그 후오너러불 컴퍼니 오브 에든버 러 골퍼스(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로 개칭)로서 1744년에 설립되었다.
로열 블랙히스와 로열 버지스는 모두 자신들이 최초의 클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 골프 수첩(The Golfer's Handbook)은 블랙히스를 1608년에 창립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클럽의 존재를 밝혀주는 기록은 1766년에야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1766년은 로열 블랙히스의 실버클럽에 처음으로 볼 하나가 부착된 해였다.
18세기에는 각 클럽들이 자체적으로 시합을 벌여 거기서 우승한 사람을 그다음 해의 회장으로 선정하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장의 이름과 날짜를 새겨진 실버볼 하나를 실버클럽에 붙여 놓곤 하였다.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 앤드루스 골퍼스(1834년에 윌리엄 4세에 의해 Roy al and Ancient로 개칭됨)는 1754년에 실버클럽을 사들였다. 그들의 비망록에 따르면 이 클럽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모든 클럽들과 시합을 벌일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시합을 하기 위해 자신들보다 먼저 설립된 클럽들을 수소문해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젠틀맨 골퍼스 클럽뿐이었다. 만일 로열 버지스 골핑 소사이어티가 자신들 주장대로 1735년에 창립되었다면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문으로 남는다.
초기의 클럽들은 건전하게 골프를 즐기던 장소로서 함께 음식도 먹고 포도주를 마시던 곳이기도 했다. 포도주 주전자가 브리티시 오픈의 트로피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당시의. 골프 클럽들은 그 대부분이 몇몇 작은 동호인 그룹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각종 모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립되었으며 일단 클럽이 결성되면 회원들은 이 세 가지의 취향을 통해 서로가 쉽게 결합되었다.
골프는 더욱 대중화되어 가면서 최초의 발상지였던 스코틀랜드의 동해안을 떠나 먼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기에 이른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로 컨트리와의 교환경기에 열중했으며 프랑스와는 올드 얼라언스(Auld Alliance-구 동맹)를) 통해 골프를 통한 친선을 맺는다.
로마인들이 파가니카를 남부 유럽에 전파시켰듯이 스코틀랜드 인들은 골프를 남쪽과 동쪽으로 전파시켰으며 마침내는 사실상 세계 지도상의 모든 나라에 보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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